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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

일본영화 형무소 안에서 (刑務所の中)

형무소 안에서의 식사 모습
형무소 안에서 점호

총도법 위반으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홋카이도 히다카 형무소에 복역 중인 하나와 가즈이치.

오늘도 형무소의 하루가 시작되고 같은 방을 쓰는 다섯 명의 수형자들은 아침 점호 준비로 각자 맡은 곳을 쓸고 닦느라 분주합니다.

아침 점호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위한 배식이 시작됩니다.

저마다의 작업 강도에 따라 밥의 양이 정해지고 배식받은 반찬은 각자의 용기에 같은 양으로 나눠 담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이들은 이내 기쁜 얼굴로 식사를 시작합니다.

 

작업중인 하나와 가즈이치
형무소 안에서 간수

식사를 마치면 작업장으로 향합니다. 이동 중엔 구령을 외치고 힘차게 팔다리를 흔들며 줄을 맞춰 걸어야 합니다. 작업이 시작되면 교도관의 허락 없인 작업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교도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작업을 마치고 나면 이들이 고대하던 식사 시간이 돌아옵니다. 식사 시간이 유일한 낙인 이들은 저마다 기쁜 듯이 음식에 달려들어 반찬에 대한 품평을 해가며 식사를 합니다.  

 

Doing Time 2002
휴식을 취하는 죄수들
마츠시게 유타카
일본 형무소의 명절 특식들

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맛있는 음식뿐 그 외엔 욕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욕심을 부려봐야 가질 수도 없고 가져봐야 형무소 안에선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자랑도 허세도 필요 없습니다. 자랑을 해보고 허세를 부려봐야 듣는 사람이 부러워하질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랑이 통할 땐 그저 모범수를 위한 집회에서 특식으로 아루포토 (비스킷 한쪽면이 초콜릿으로 코팅된 일본의 과자)와 콜라를 먹고 돌아왔을 때뿐입니다. 다들 진심으로 부러워하니까요.

 

 

그런데 교도관의 통제를 받으며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답답한 이들의 생활을 보고 있자니 어느덧 바깥세상의 우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자유롭지만 각자가 짊어진 책임과 의무. 때로는 욕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피곤에 지친 하루하루를 보내며 쉬고 싶어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과 과시가 만연하고 욕망으로 가득 차 스트레스가 끊일 일 없는 세상 속 일상.

 

형무소 안에서 2002
미소 짓는 하나와

감옥 속 세상은 어쩌면 우리들 세상보다 자유로운지도 모릅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도 쓸데없는 경쟁도 욕심도 필요 없습니다. 욕심이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그저 교도관의 통제에 따라 맡은 일을 해 나가고 규정을 지키며 소소한 행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면 그만입니다.

 

누구를 만날 필요도 없고 머리를 쓰는 일도 아니고 여긴 나한테 딱 어울리는 곳일지도 몰라.
만약 평생 나한테 여기서 살라고 하면 어떨까?
...
한 3일 정도 울고 나면 체념할 수 있을 것 같아.

 

- 극 중 주인공 하나와 가즈이치의 독백 -

 

 

그저 단팥빵 하나로 웃음 짓고 명절의 맛있는 음식들로 행복해하는 일상보다 평온한 감옥 속 세상. 현실이 답답할 땐 문득 영화 속 형무소 안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 집니다.

  

*본 글은 영화 속에 묘사된 연출된 형무소 생활에 대한 개인의 감상 일뿐 실제 범죄행위를 두둔하거나 수형 생활을 미화할 의도는 없습니다.  

 

 

형무소 안에서 만화
형무소 안에서 만화책

 

이 영화는 자신의 실제 형무소 생활을 에세이 형식으로 그린 하나와 가즈이치의 만화 형무소 안에서를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하나와 가즈이치는 총기 마니아로서 불법 총기 개조 및 실제 총과 실탄을 소지한 죄목으로 총도법 (총포. 도검류 소지 등 단속법) 위반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9510월부터 19979월까지 2년간 복역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잠깐 묘사되는 부분이지만 총기 마니아가 되면 결국엔 실총을 보유하고 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나 봅니다.

 

하나와 가즈이치는 출소한 이듬해인 19982월부터 자신의 감옥생활을 그린 만화 형무소 안에서를 2년간 연재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00년 7월에 발간된 단행본으로 그 해 *데즈카 오사무 상의 후보로까지 거론되나 본인이 고사했다고 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상은 철완 아톰의 작가이자 의사이기도 한 일본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뛰어난 만화를 선정해 시상하는 아사히 신문사 주관의 권위 있는 상입니다.

 

만화 형무소 안에서는 맹인 안내견의 일생을 그린 영화 퀼 (Quill, 2010), 피와 뼈 (Blood and Bones, 2005) 등을 감독한 재일교포 출신 최양일 (일본명: 사이 요이치) 감독에 의해 2002년 영화화되었으며 주연인 야마자키 츠토무 및 우리에겐 고독한 미식가로 친숙한 마츠시게 유타카, 카가와 테루유키, 타구치 토모로오 등의 유명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그 외에 쿠보즈카 요스케, 시이나 킷페이, 오스기 렌 등이 카메오로 출연해 영화의 재미를 한층 더 해 줍니다.

1949년 재일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양일 감독은 영화감독 외에도 극작가, 영화 제작자, 배우 등으로 활동했었지만 안타깝게도 2022년 11월 27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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